부산과 마주하며 일본 규슈의 현관으로 자리한 후쿠오카의 하카다역에서 JR가고시마 혼센 또는 나가사키 혼센 특급으로 40분 정도를 달리면 아는 사람만 안다는 명탕의 온천지와 힐링메뉴로 가득한 사가현과 만날 수 있다. 사가현이라는 이름은 분명 낯설다. 하지만 낯설음이 주는 신선함에 더해 명품급 힐링메뉴가 기다리니 사가현 여행에 괜한 걱정과 염려는 접어두어도 좋다.
명물은 가득하다. 아웃도어에서부터 역사유산과 미식에 온천까지, 일본여행에 기대하는 모든 메뉴가 한 세트로 꾸려지니 일본 이상향이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다. 특히나 사가현의 숨겨진 보석으로 칭하여지는 가라쓰(唐津)는 이 가을 가장 매력적인 목적지다. 규슈올레와 한국과의 뗄레야 뗄 수 없는 역사, 그리고 이국다운 유니크한 먹거리까지 함께하니 말이다.
목적지인 사가현 가라쓰(唐津)는 이름부터가 재미있다. 가라(唐)는 과거 조선과 중국대륙을 일컫는 말이고 쓰(津)는 나루터라는 뜻으로, 풀어내면 ‘대륙으로 향하는 나루터’라는 의미다. 한자어를 우리말로 그대로 읽으면 당진(唐津)이라고 읽히는데 우리네 충청남도 당진과 한자어도 같고 지명이 의미하는 뜻까지도 같다. 한마디로 규슈 사가현의 가라쓰는 일본 최남단 규슈섬이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대륙과의 교류의 요충지이자 가라쓰의 바닷길을 이용해 문물을 받아들인 고대 규슈의 관문인 셈이다.
▲나고야성터 천수대
일찍이 한반도를 향해 문을 연 곳인 만큼 과거 한반도 고대문화의 흔적들이 가라쓰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한국에서 날아온 여행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표격인 나고야성터(名護屋城跡)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출병의 전진기지였던 곳으로 한반도 침략을 도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한해협과 마주한 가라쓰시 북단에 세운 나고야성이 있던 곳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아픈 전쟁의 역사가 시작되고, 양국의 불행한 역사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조선수군의 주역 거북선이 전시된 나고야성박물관
지금은 소실되어 덩그러니 성터와 진영터만 남아 있지만 당시의 역사를 전하는 사가현립 나고야성박물관이 자리해 당시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박물관의 의미가 꽤나 각별하다. 과거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토대로 일본열도와 한반도의 교류의 역사를 돌아보는 테마로 구성된 보기 드문 시설이기 때문이다.
상설전시실은 ‘일본열도와 한반도의 교류사’라는 타이틀로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일본열도와 한반도의 교류의 역사를 다양한 전시물로 전해준다. 눈에 띄는 것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병의 군함 ‘거북선’이다. 일본 수군에 전패를 안긴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전시관의 한 축을 차지하는데 역사에 대한 반성을 통해 새로운 한일관계를 도모한다는 나고야성박물관의 소개 글귀가 마음을 숙연케 한다.
박물관을 지나 구릉을 오르면 나고야성터의 하이라이트인 천수대가 기다린다. 이키섬, 쓰시마(대마도), 대한해협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경관이 마음 속 깊은 고민까지 날려버리니 힐링이라는 테마의 규슈올레 가라쓰코스의 백미라 칭해도 좋을듯하다.
▲웅장함을 더하는 가라쓰성
가라쓰 도심 한 가운데 솟아 오른 가라쓰성도 여행자의 발길을 부여잡는다. 가라쓰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인 데라자와 히로타카가 1602년부터 장장 7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한 성으로, 거대한 위용은 없지만 천수각 최상층에서 360도 파노라마로 바라보는 가라쓰해안과 니지노마쓰바라, 마쓰우라강과 시내경관은 가라쓰관광의 백미이니 지나치면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 특히 가라쓰해안을 따라 조성된 무지개송림이라는 뜻의 ‘니지노마쓰바라’를 만날 수 있어 더욱 그렇다.
▲가가미야마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니지노마츠바라
니지노마쓰바라는 가라쓰만을 따라 약 100만 그루의 소나무가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호를 그리며 이어진 일본 3대 소나무숲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흔치않은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조성된 역사를 살펴보면 17세기초 초대 번주인 데라자와 히로타카가 바다와 마주한 가라쓰를 해풍과 파도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해 방풍림과 방조제의 역할로 해송을 심은 것이 그 시작이며, 지금은 길이 5km, 폭 700m에 이르는 거대한 송림을 자랑하고 있다. 니지노마쓰바라의 빼어난 전체적인 경관을 감상하고 싶다면 가라쓰 시내에 자리한 가가미야마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코스를 추천한다. 이곳에서 활처럼 휘어진 니지노마쓰바라의 푸르른 송림과 파할게 색칠한 대한해협의 바다전경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제주도를 쏙 빼닮은 명품 해안길,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걷기 좋은 완연한 가을이 찾아온 만큼 가라쓰에 발을 들인다면 규슈올레도 필수코스다. 규슈올레 가라쓰코스는 규슈올레의 원조격인 제주올레와 가장 닮아있다. 제주를 꼭 닮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 해안길을 만날 수 있는데, 제주올레가 시작된 제주도 서귀포시와 가라쓰시는 지난 1994년부터 자매도시로서 교류가 각별하니 올레의 상징성이 더욱 특별하다.
가라쓰코스는 나고야성터 유적지를 중심으로 일본 전통의 모모야마 문화를 접해볼 수 있는 시간여행과 더불어 하도미사키 등, 대한해협의 절경을 감상하며 가라쓰의 명물 요리로 소문난 소라구이까지 맛볼 수 있는 코스다. 이 길을 걸으면서 자연과 역사, 그리고 미각까지 아우르기에 규슈올레길 코스 중 가장 다채롭고 매력적인 코스로 정평이 가득하다.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코스의 전반은 나고야 성터 주변의 진영터를 시작으로, 일본 전통의 가루녹차를 즐겨볼 수 있는 다원 가이게쓰(海月), 일본의 3대 다기(茶器)로 불리며 일본인의 사랑을 받는 가라쓰 도자기를 구워내는 가마인 ‘히나타요(炎向窯)’ 등이 아름다운 절경을 따라 점재한다.
제주도를 빼닮은 해안코스는 코스 후반부에서 만날 수 있다. 일본 북서부 끝에 위치한 하도미사키를 향해 걷는코스로, 자연이 조각한 주상절리와 푸른 해송이 있어 제주의 해안올레를 걷는 듯 착각까지 들게 만든다. 제주도와의 교류를 상징하듯 종점에는 제주도 돌하루방이 바다를 등지고 자리하니 규슈올레 가라쓰코스를 완주한 기념사진을 찍기에 제격이다.
더불어 종점 하도미사키 주차장에 있는 작은 실내 포장마차에서는 오징어구이와 소라구이를 팔고 있다. 특히 소라구이는 일본식 간장양념을 넣어 구워내는데, 소라껍질을 돌돌 돌려 빼낸 큼직한 소라의 속살이 바다정취까지 전해주니 놓치면 아쉬움이 크다.
요부코 오징어회 맛보고 가을 가라쓰군치 축제 볼거리
사가현을 찾았으니 명물 요리를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사가현 가라쓰 시내 중심가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자리한 요부코 새벽시장이 자리하는데 일본 3대 새벽시장의 하나로 유명세가 각별해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해 가라쓰의 미식포인트로 인기다.
요부코항구의 갖은 수산물중에서도 명물은 ‘오징어회’다. 고급스런 생선회를 놔두고 겨우 오징어회냐며 불평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가라쓰 요부코의 오징어회를 한 번 맛보고 나면 오징어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만큼 각별하니 걱정은 필요없다.
▲가라쓰 명물인 요부코 오징어회
가라쓰의 명물인 오징어회는 ‘이카노 이키즈쿠리’(イカの活き造り)라고 한다. 내어진 오징어회의 모습이 일품이다. 큼직한 쟁반에 살아있는 오징어 모양 그대로 채를 썰어 내어놓았는데 오징어회 아래 데코레이션으로 깔아놓은 갈대발이 다 비칠 만큼 투명한 살이 감탄사부터 터지게 만든다.
생전 처음 만나는 오징어회의 위용에 머뭇거리다 입으로 가져간 오징어회는 더욱 큰 감탄사로 돌아온다. 쫀득이는 독특한 식감이 단연 일품이다. 질기다는 오징어외의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살집이 입안에서 톡하고 터지며 사르르 목 뒤로 넘어가는데, 언뜻 광어회의 쫄깃함과 비슷하리만큼 이미 싸구려 오징어회의 이미지는 사라진지 오래다. 입안 가득히 감도는 단맛도 고급스럽다. 씹을수록 은은히 입안에 퍼지는 단맛은 회를 목으로 넘기고도 한참을 입안에서 맴돌며 최고급 오징어회의 여운을 더해준다.
맛의 비결은 품종이다. 한국에서 흔히 즐기는 염가의 스루메이카가 아닌 아오리이카(흰오징어)다. 난류성 오징어로 한국에선 제주도 인근에서만 잡히는데 가라쓰에선 바다 전역에서 오징어 중 가장 맛이 좋다는 아오리이카가 풍성하게 잡힌다. 오징어회의 가격은 1인분 1,800엔 선. 몸통은 오징어회로 즐기고 다리는 즉석에서 덴뿌라(튀김)로 내어져 넉넉한 양으로 즐길 수 있다.
가을시즌 사가현을 찾는다면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축제인 가라쓰군치 축제(唐津くんち)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축제는 매년 11월 2일부터 4일까지 개최되어 봉물로서 거대한 가마인 히키야마(曳山)를 가라쓰신사에 바치는데 14대에 이르는 거대한 전통 가마의 행렬이 펼쳐진다. 축제기간을 놓친다면 ‘가라쓰군치 히키야마 전시장’이 있어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전시장 내에는 가라쓰군치의 주역인 14대의 거대한 히키야마가 전시되어 있는데 화지(和紙)에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힌 호사스런 풍모가 축제의 열기를 그대로 전해주니 가라쓰군치 축제를 직접 즐기지 못하는 이들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여행정보>
사가현 가라쓰까지는 후쿠오카공항에서 JR철도 치쿠히선(筑肥線) 니시카라쓰행을 탑승하면 환승 없이 가라쓰를 찾을 수 있어 편리하다. 철도 소요시간은 약 1시간 30분. 가라쓰 관광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가라쓰관광협회 공식사이트(www.karatsu-kankou.jp)에서 확인할 수 있다.